한남·보광동 재개발 계획으로 시간이 멈춘 곳, 이슬람 사원에서 도깨비 시장까지 이어지는 500m의 기록. 개발이 유예된 지역의 낮은 집값은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고, 허름했던 거리는 비로소 예술로 피어났다. 신을 부르는 사원의 소리와 클럽의 비트가 공존하는 곳. 가장 이질적인 문화와 날것의 삶이 엉켜 묘한 낭만을 만들어내는,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뜨내기들의 골목’을 탐닉한다.
Project: 골목길 아카이빙 매거진 <잼이路> Vol.1 창간호
Location: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 10길 (이슬람 사원 ~ 도깨비 시장)
Format: 920mm X 160mm Accordion Fold (병풍 접지 / 12p)
Credit: 기획: 엄용선 / 발행: 잼이보소닷컴
Period: 2014. 12
재개발이 멈춘 시간, 뜨내기의 시선으로 훔쳐본 날것의 낭만

[Director’s Note] 낡은 전깃줄마저 온기로 읽히는 기묘한 골목 탐닉
“길 위에 있다. 그 길을 걷는다. 사소한 관찰은 낱말이 되고, 소소한 탐닉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방서 옆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골목이 있다. 이슬람 사원의 이국적인 기도 소리(Adhan)와 지하 클럽의 쿵쿵거리는 비트가 공존하는 곳. 오래된 백반집 할머니와 타투를 한 힙스터가 같은 평상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곳. 온갖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에서 낡은 전깃줄 마저 온기로 읽히는 기묘한 골목을 탐닉한다.


2014년 12월, <잼이路>가 첫 번째로 소환한 길은 바로 이 ‘우사단로 10길’이다. 한남·보광동 재개발 계획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이 500m 남짓한 골목은, 개발이 유예된 틈을 타 낮아진 집값 덕분에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철저히 ‘뜨내기’가 되기로 한다. 주민도 아니고 관광객도 아닌, 경계인의 시선으로 골목의 냄새와 소음을 탐닉한다.
전깃줄의 엉킴에서 온기를 찾고, 시장통의 소음 속에서 타인의 은밀한 생을 엿듣고, 오래된 사물에서 본능을 읽어낸다. 상반된 것들이 좁은 골목에 뒤엉켜 만들어내는 날것의 에너지. 그것은 가난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우사단로의 기록은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골목을 감각(Sense), 소설(Fiction), 관찰(Observation)의 층위로 분해하여 재조립하였다.
[Archive] 낯선 공기의 채집, 시각보다 먼저 닿는 감각들
우사단로는 시각보다 청각과 후각이 먼저 반응하는 거리다.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Adhan)와 지하 클럽의 비트가 공존하고, 오래된 백반집 냄새와 타투 숍의 잉크 냄새가 섞인다. 낡은 것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공기’에서 도시의 생명력을 읽어낸다.
불협화음의 기록: 낯선 공기와 냄새
질서 정연한 강남의 대로변에서는 맡을 수 없는, 퀴퀴하지만 매혹적인 B급의 향기. 우사단로의 본질은 깔끔함이 아니라 뒤섞임에 있다. 이슬람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향신료 냄새, 도깨비 시장의 비릿한 생선 내음, 오래된 건물이 품은 곰팡이의 습기가 켜켜이 쌓여 이 골목만의 체취를 만들어낸다.

<온기를 나르는 줄>
“아이가 낙서한 것처럼 얽힌 전깃줄은… 가가호호 재미를 모아 오는지 단내가 풍겼다.
전기를 나르는 전깃줄처럼 온기를 나르는 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에디터는 하늘을 뒤덮은 무질서한 전깃줄에서 ‘연결’의 온기를 읽어낸다. 누군가는 도시의 흉물이라 했지만, 그 눈에는 마치 각 가정으로 따뜻한 밥 냄새를 실어 나르는 핏줄처럼 보였다. “전기를 나르는 전깃줄처럼 온기를 나르는 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삭막한 도시에서 ‘감온(感溫)’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결핍에서 비롯된 따뜻한 상상이다. 엉킨 줄 사이에서 단절이 아닌 이어짐을 발견하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이층의 빨간 벽돌>
“오후 세시의 도깨비시장은 이층집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 맞은편 할머니는 팔을 휘휘 저어 고등어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을 뿐이었다.”
오후 세 시, 도깨비 시장의 소음 사이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낡은 이층집에서 흘러나오는 여자의 신음 소리는 민망함이 아니라 골목이 가진 원초적인 생명력이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날것의 삶, 그것이 우사단로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 뜨내기를 선택한 것이 우사단로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는 고백은, 이 골목이 허락하는 자유의 무게를 증언한다.
공간의 서사, 현실과 소설 사이
‘키스 캘린더’, ‘하자 포차’, ‘도우미 미용실’, ‘아오이 소라’… 기상천외한 간판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팩트(Fact)만 나열하는 건 재미없다. 우리는 골목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기 위해 픽션과 에세이를 넘나들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 그것이 우사단로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아오이 소라의 케밥>
“사랑엔 국경도 없다가 아니라 위생도 없다는 거지…
소똥 대신 사람의 변 냄새로 뒤덮인 거리(파리), 지나는 이들에겐 향신료 대신 야릇한 노린내가 풍겼다.”
잘 씻지 않는 것을 루이 14세의 위생 관념에 비유하며 합리화하는 남자 ‘남주’. 에디터는 파리와 우사단로를 병치시키며 B급 감성의 낭만을 직조한다. “소똥 대신 사람의 변 냄새로 뒤덮인 거리(파리), 지나는 이들에겐 향신료 대신 야릇한 노린내가 풍겼다(우사단).” 술집 ‘아오이 소라’의 통유리 너머로 건넨 윙크가 무참히 씹히는 장면은, 몽마르트르가 아닌 우사단로이기에 가능한 서사다. 실패한 유혹조차 낭만이 되는 골목의 문법을 보여준다.
<모에미는 어디 있나?>
“여자가 풀지 못한 실이 우사단의 전선이 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풍경을 걷고 있다.
모에미는 어디 있나?”
에디터는 영화 〈언두(Undo)〉의 여주인공 모에미가 앓던 ‘강박성 긴박증후군’을 우사단로의 얽히고설킨 전깃줄에 비유한다. 묶을수록 더 조이는 불안, 풀려고 할수록 더 엉키는 매듭. “여자가 풀지 못한 실이 우사단의 전선이 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풍경을 걷고 있다. 모에미는 어디 있나?” 이 질문은 현대인의 강박과 고독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적 상상력을 공간에 투사하여 우사단로를 심리적 지형도로 전환시킨 시도가 돋보인다.

뜨내기의 시선, 사물의 탐닉
이곳의 사물들은 말을 간다. 촌스러운 조명 가게의 비너스 상에서 풍요와 다산을 읽고, 돌직구처럼 생긴 인형에게서 묘한 구매욕을 느낀다. 사소한 오브제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탐닉의 시선’으로 골목의 생태계를 관찰한다. 뜨내기이기에 가능한 거리두기, 그 거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이 아이들은 태곳적 본능에 충실한, 아름다운 인체를 묘사한 행운의 부적이야.
힐끔거리는 시선에서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구입을 보류해야겠다.”
조명 가게에 놓인 뚱뚱한 여인상. 에디터는 역사책에서 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린다. 얼굴은 없고 가슴과 엉덩이만 강조된 여자 석상, 그것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자 맹수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부적이었다. “힐끔거리는 시선에서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구입을 보류해야겠다.” 욕망을 인정하되 드러내지 못하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사물에 투영한 시선이 흥미롭다. 선사시대의 본능과 현대의 억압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에디터의 솔직함이 묻어난다.
<오승환의 돌직구>
“첫 인상은 ‘이상해’, 두 번째는 ‘웃기네’, 세 번째는 ‘사고 싶네.’ …
내 집이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라면 고민 없이 구입하겠다.
하지만 내 집은 혼자가 아닌데다 때때로 타인에게 보여 져야만 한다.”
첫인상은 이상하고, 두 번째는 웃기고, 세 번째는 사고 싶어지는 인형. 에디터는 이 기묘한 사물 앞에서 ‘내 집’이 없는 뜨내기의 비애를 토로한다. “내 집이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라면 고민 없이 구입하겠다. 오늘도 결국 그것을 ‘보는데’만 만족한다.” 소유하지 못하는 자의 시선은 관음(觀音)이 아니라 체념에 가깝다. 오승환의 돌직구처럼 본능에 박히는 물건 앞에서도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야 하는 청춘의 초라함이 담담하게 배어 있다.
펼치면 길이 되는 종이, 920mm의 골목을 손에 쥐다.



<잼이路> Vol.1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우사단로의 지형도’다. 우리는 좁고 긴 이 골목의 호흡을 끊지 않고 한 숨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코디언 북(Accordion Fold)이다. 접혀 있을 땐 한 손에 들어오는 핸드북 이지만 촤르륵 펼치면 920mm에 달하는 긴 길이가 된다. 독자가 이 종이를 양손으로 길게 펼쳐 들었을 때, 비로소 우사단로라는 공간감이 손끝에 전해지길 바랬다.
- 920mm Accordion Fold (아코디언 북) 접었을 때는 한 손에 잡히는 지도(Map)지만, 펼치면 길이 92cm에 달하는 긴 파노라마가 된다. 독자가 종이를 촤르륵 펼치는 순간, 마치 실제 골목길을 걷는 듯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경계인의 시선으로 낯선 냄새와 소음, 얽히고설킨 전깃줄과 사람들을 관음하듯 기록한다. 화려한 색채를 뺀 흑백(B&W)의 톤은 그 관찰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이자, 독자가 자신의 감상으로 채색할 여백으로 설계되었다.
- 흑백(B&W)의 여백 화려한 색채를 배제했다. 골목의 붉은 벽돌도, 파란 물탱크도 모두 흑백으로 처리했다. 이것은 미완성이 아니다. 이 길을 걷게 될 독자가 자신의 감상으로 그 여백을 채색하기를 의도한 설계다. 거친 입자감의 흑백 사진은 시간이 멈춘 우사단로의 쓸쓸하고도 힙한 정서를 대변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 사라지는 것들은 말이 없다.


2014년의 우사단로는 ‘재개발’이라는 유예된 시간 속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불꽃같았다. 낮은 집값 덕분에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그 독특한 생태계는, 이제 자본의 논리와 젠트리피케이션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12년이 지난 지금, 우사단로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때의 청년들은 어디로 흩어졌으며, ‘아오이 소라’의 케밥 냄새와 ‘엔트로피’의 나른한 오후는 어디에 박제되었을까. 사라지는 것들은 말이 없다. 다만 기록될 뿐이다.
920mm의 긴 종이 위에 꾹꾹 눌러 담았던 그 겨울의 냄새를 우리는 기억한다. 뜨내기들이 잠시 머물다 간 자리마다 피어났던 촌스럽고도 힙한 낭만을. <잼이路> Vol.1은 단순한 잡지가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의 골목이 내지른 마지막 숨결을 박제한 ‘소환장(召喚狀)’이었다.
서재 한구석에 자리한 이 좁고 긴 종이를 펼치는 순간, 당신은 2014년의 우사단로를 다시 걷게 된다. 전깃줄이 꿀타래처럼 얽힌 하늘 아래, 낯설지만 따뜻했던 그 비릿한 공기 속으로.
“사소한 관찰은 낱말이 되고, 소소한 탐닉으로 이야기는 완성된다.”
[프로젝트 전체 보기] 도시의 문장을 수집하다, 독립잡지 <잼이路>
※ 이 글은 2014~2015년 도시의 골목을 기록했던 독립잡지 <잼이路>의 여정을 2026년의 시선으로 소환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Collaboration] 공간과 브랜드의 서사를 설계합니다.
단순한 홍보가 아닌, 브랜드가 지닌 ‘대체 불가능한 이야기’를 기획합니다.
도시의 골목을 아카이빙하던 에디터의 시선으로, 브랜드 헤리티지(Heritage)를 단단한 텍스트로 구축해 드립니다.
- Urban & Space Archiving: 공간이 가진 역사성과 맥락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해석하여 브랜드 스토리로 치환합니다.
- Micro-History Storytelling: 거창한 역사가 아닌,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미시적이고 감성적인 서사를 설계합니다.
- Editorial Leadership: 기획부터 취재, 제작까지. 하나의 완결된 콘텐츠 시리즈를 총괄하는 에디토리얼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모든 브랜드엔 말하지 않은 문장이 있습니다. 그 문장을 찾아드립니다.”
Life Architect, EOM YONG SUN
삶의 밀도를 짓고, 시간의 결을 수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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