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이路>는 ‘길 위의 이야기’를 줍는 독립출판 프로젝트. 화려한 대로변이 아닌, 도시의 모세혈관 같은 골목길을 소환(召喚)하여 그곳의 사소한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사단로’부터 젠트리피케이션 직전의 ‘성수동’까지. 보행자의 속도로 탐닉하며 시대의 단면을 실험적 종이 위에 인쇄하였다. 사소한 관찰이 낱말이 되고, 소소한 탐닉이 역사가 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Project: 골목길 아카이빙 매거진 <잼이路> Series
Role: Publisher & Editor in Chief (기획, 편집, 취재, 디자인)
Credit: 기획: 엄용선 / 발행: 잼이보소닷컴
Period: 2014. 12. – 2015. 08. (총 7호 발행)
Funding: 텀블벅(Tumblbug) 소셜 펀딩 달성 및 정기구독 모델 구축
참여작가: 노갱, 삐딱진택진, 엄턴구리, 하지마윤 외
사소한 관찰은 낱말이 되고, 소소한 탐닉으로 이야기는 완성된다.

2026’s Note: 걸음이 느린 사람들 손에 들린 한 장의 종이
도시는 거대한 텍스트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행간을 건너뛰고 페이지를 넘겨버린다.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는 바쁜 걸음 속에서 길 위의 풍경은 흐릿한 배경으로 물러나고 도시의 낱말들은 문장이 되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져 산화(酸化)한다. 2014년, 우리가 주목한 것은 바로 그 흩어지는 낱말들, 도시의 ‘사라져가는 문장들’이었다. 속도를 늦춰야 비로소 해독되는 풍경들이 있다. 독립출판물 <잼이路>는 그 틈새를 읽기 위해 ‘걸음이 느린 사람들 손에 들린 한 장의 종이’를 자처했다.

2014년 겨울부터 2015년 여름까지, 우리는 서울과 인천의 골목들을 기록했다. 화려한 대로변이 아닌, 도시의 모세혈관 같은 뒷골목을 소환(召喚)하였다. 재개발의 먼지 속에 묻힐 뻔한 우사단로의 낡은 벽돌부터, 기찻길 옆 이름 없는 술집의 소음까지. 그것은 맛집을 소개하는 정보가 아니라, 소멸을 앞둔 공간의 마지막 표정을 읽어내는 ‘도시 관찰기’이자, 거대 담론에 가려진 개인의 시간을 채록한 ‘미시사(Micro-History) 아카이빙’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잡지가 아니라 ‘소환장(召喚狀)’이라 불렀다. 잊혀가는 골목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가 당신에게 보내는 낮은 목소리의 초대장이었으므로. 길 위에 있다. 그 길을 걷는다. “사소한 관찰은 낱말이 되고, 소소한 탐닉으로 이야기는 완성된다.”
소멸 앞에서의 기록 (Archive of Vanishing)
왜 ‘골목’인가? <잼이路>는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를 소개하지 않는다. 우리는 화려하고 복잡한 대로변이 아닌 샛길과 뒷길을 탐했다. 재개발로 곧 사라질지도 모를 우사단로의 낡은 벽돌, 용산 기찻길 옆 오막살이, 성수동 공장의 붉은 벽 등등. <잼이路>는 도시의 거시적인 역사나 정보가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공간의 질감을 ‘보행자의 속도’로 채록했다.

창간호의 배경이 된 ‘우사단로 10길’은 한남/보광동 재개발 계획과 맞물려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관리가 되지 않아 허름했지만, 낮은 집값 덕분에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기묘한 생기를 뿜어내던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소환(召喚)’했다. 대로변이 아닌 샛길과 뒷길을 탐하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풍경과 아오이소라의 케밥 같은 일상의 단면을 포착했다. 그것은 개발 논리에 밀려 삭제될지도 모를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저항이자 기록이다.
형식이 곧 메시지다 (Format implies Message)
“콘텐츠에 맞춰 구조를 설계하는 에디토리얼 실험실”
<잼이路>에는 고정된 판형이 없다. 우리는 매달 소환되는 골목의 성격과 호흡에 따라, 그 이야기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물성(Materiality)’을 고민하고 실험했다.


- 920mm 아코디언 (Accordion Fold): 끝없이 이어지는 좁고 긴 골목의 호흡을 표현하기 위해, 펼치면 1미터에 육박하는 병풍 접지 방식을 택했다. 독자는 종이를 펼치며 마치 실제 골목을 걷는 듯한 파노라마를 마주하게 된다. 접으면 한 손에 잡히는 지도가 되고, 펼치면 이야기가 흐르는 길이 된다.
- A1 타블로이드 (Tabloid): 거대한 공장 지대나 복잡한 이야기가 얽힌 곳은 A1 사이즈의 대형 타블로이드 판형에 담아, 지도를 보듯 도시의 단면을 한눈에 조망하게 했다.
- 플립북 매거진 (Flipping Book): 깊이 있는 텍스트와 서사가 중요한 골목은 넘겨보는 책자 형식을 통해 읽는 호흡을 조절했다.
창간호 <우사단로>는 책장이 넘어가는 잡지가 아니다. 좁고 길게 이어지는 골목의 호흡을 표현하기 위해, 펼치면 1미터에 육박하는(920mm X 160mm) 병풍 접지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쫙 펼쳤을 때 마치 하나의 길처럼 보이길 의도한 디자인이다. 걸음이 느린 사람들의 손에 들린 이 한 장의 종이는, 접으면 주머니에 들어가지만 펼치면 골목의 지도가 되고 이야기의 파노라마가 되었다. 우리는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종이 위의 길을 함께 걷기를 원했다. 화려한 색채 대신 흑백을 택한 이유는, 독자가 자신의 감상으로 그 여백을 채색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함께 쓰는 도시의 비망록 (Collective Memory)
“지속 가능성의 증명: 판을 짜고 사람을 모으는 힘”
단순히 “잡지를 만들어봤다”는 경험과, “이슈 발굴부터 자금 조달, 팀 빌딩을 통해 시리즈를 완결시켰다”는 역량은 다르다. 이 프로젝트는 편집장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 ‘지속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과정이다.
- Funding (자생적 구조): 텀블벅(Tumblbug) 소셜 펀딩을 기획하여 제작비를 조달하고, 충성도 높은 정기구독 모델을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창작을 넘어 프로젝트의 비즈니스적 생존 가능성을 입증한 시도였다.
- Team Building (협업 리더십): 혼자 걷는 길은 쓸쓸하지만, 함께 걷는 길은 여행이 된다. ‘동팔이’라 불리는 객원 에디터들을 모집하고 조직하여, 각자의 시선으로 골목을 채록하게 하였였다.
- Consistency (일관된 태도): 8개월 이상 팀을 이끌며 시리즈를 발행하고 완결지은 경험. 이것은 기획자이자 편집장(Editor-in-Chief)으로서 프로젝트의 A to Z를 장악하고 완주할 수 있는 ‘실행력’과 ‘끈기’를 증명한다.
혼자 걷는 길은 쓸쓸하지만, 함께 걷는 길은 여행이 된다. 객원 에디터들을 모집하여 함께 우사단로와 용산 기찻길 등을 걸으며 각자의 시선으로 골목을 채록한 경험, 우리는 사소한 관찰을 낱말로, 소소한 탐닉을 이야기로 엮어내며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갔다. 또한 텀블벅 소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모으고, 정기 구독자들과 연대했다. 개개인의 사소한 일상이 모여 의미 있는 교류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종이 위에서 증명해냈다.
소환된 8개 골목의 기억들
2014년 겨울부터 2015년 여름까지, 장장 9개월간 우리는 서울과 인천의 골목을 기록했다. 화려한 대로변 뒤, 도시의 가장 솔직한 표정이 숨겨진 곳. 낡고, 거칠고, 때로는 비릿하지만 결국엔 사람 냄새로 귀결되는 8개의 길을 소환한다. 개개인의 소소한 관찰과 생각들을 존중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그것은 지금은 변해버린, 혹은 사라져 버린 그 시절 그 골목의 풍경들이다.
Vol.1 우사단로 10길
Usadan-ro 10-gil
한남·보광동 재개발 계획으로 시간이 멈춘 곳, 이슬람 사원에서 도깨비 시장까지 이어지는 500m의 기록. 개발이 유예된 틈을 타 낮아진 집값은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고, 허름했던 거리는 비로소 예술로 피어났다. 신을 부르는 사원의 소리와 클럽의 비트가 공존하는 곳. 가장 이질적인 문화와 날것의 삶이 엉켜 묘한 낭만을 만들어내는,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뜨내기들의 골목’을 탐닉한다.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 10길 일대
Vol.2 용산 기찻길
Yongsan Railroad Street
거대한 빌딩 숲 사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처럼 남겨진 낡은 동네. 기차 건널목의 경보음 소리를 따서 ‘땡땡거리’라 불리던 이곳은, 화려한 용산의 마천루 속에 고립된 섬과 같다. 기차가 지나가면 대화는 멈추고, 가난한 기침 소리는 묻힌다. 삶의 한복판을 가르는 폭력적인 소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사랑을 한다. 부서진 기타와 철거 예정 딱지가 붙은 담벼락, 그곳엔 치열한 ‘버팀’이 있다.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한강로 일대 (백빈건널목 주변)
Vol.3 충무로 인쇄골목
Chungmuro Printing Street
디지털 시대에도 묵묵히 돌아가는 윤전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는 이곳이 여전히 ‘물성(物性)’을 만드는 거대한 공장임을 증명한다. ‘수지’라는 단어에서 첫사랑이 아닌 종이를 떠올리고, 기계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는 곳. 겉보기엔 미로처럼 복잡하고 거칠지만, 그 안에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신성함과 사람 냄새 나는 B급 유머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서울시 중구 인현동·필동 인쇄골목 일대
Vol.4. 부평 묏골마을
Bupyeong Moetgol Village
도시의 화려함에서 탈락한 것들은 어디로 갈까. ‘신세기’라는 이름의 낡은 약국과 ‘7900원’짜리 월세방.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가장 초라한 얼굴을 마주한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미로 같은 골목은 쓸쓸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의 결핍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따뜻한 온도가 남아 있다. 실패한 꿈과 고단한 청춘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서 소박한 삶의 비망록을 발견한다.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묏골마을 일대

Vol.5. 삼선동 장수마을
Samseon-dong Jangsu Village
한양도성 성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지붕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이곳은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 대신, 주민이 함께 고쳐 쓰는 ‘재생’을 택하여 마을의 시간을 지켰다.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은 불편함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통의 길이 되며, 멈춰진 시간 속에서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동체의 무늬를 보여준다. “멈춰버린 시간 속, 욕망만은 늙지 않았다. 100세를 자랑하는 장수마을에 떨어진 야한 여자 ‘나미’와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 노인들. 성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죽음 대신 농담을 던지는 유쾌한 실버 시트콤.”을 만나보자.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1가 300번지 일대

Vol.6. 성수동 공장골목
Seongsu-dong Factory Street
젠트리피케이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초기 성수동의 기록.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와 최신 유행을 좇는 힙스터가 공존하던 과도기의 풍경을 담았다. 붉은 벽돌 공장이 세련된 카페로 변모하고, 기계 소음과 커피 향이 기묘하게 섞이던 그곳은 ‘노동’과 ‘문화’가 충돌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던 불협화음의 현장이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2가 연무장길 일대

Vol.7 창신동 봉제거리
Changsin-dong Sewing Street
가파른 언덕을 따라 수천 개의 봉제 공장이 벌집처럼 들어찬 곳.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가 이 골목의 배경음악이다. 겹겹이 쌓인 원단과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노동의 역사와 치열한 삶의 현기증을 기록했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 일대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길, 그 너머의 기록

이 프로젝트는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었다.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소셜 펀딩(Tumblbug)’을 통해 취지에 공감한 낯선 후원자들이 든든한 구독자가 되어주었고, ‘동팔이’라 불리는 객원 에디터들이 함께 셔터를 누르며 골목의 틈새를 누볐다. 도시를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그 길 위에 사는 사람과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단순히 “잡지를 만들어봤다”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치열했던 과정이다. 수개월 간 이슈를 발굴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팀을 운영하며 시리즈를 완결시켰다는 사실. 그것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대하는 스스로의 집요하고도 일관된 태도(Consistency)를 증명한다.
10년 전, 우사단로의 낡은 벽돌을 쓰다듬던 그 손길은 이제 브랜드와 공간이 가진 고유한 서사를 발굴하는 기획으로 이어졌다. 8권의 잡지는 절판되었지만, 우리가 수집한 ‘도시의 문장’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서재에, 그리고 이 디지털 아카이브에 살아 숨 쉰다. 흩어진 파편에서 본질을 응시하고, 무형의 기억을 유형의 결과물로 빚어내는 일.
“사소한 관찰은 낱말이 되고, 소소한 탐닉으로 이야기는 완성된다.”
※ 이 글은 2014~2015년 도시의 골목을 기록했던 독립잡지 <잼이路>의 여정을 2026년의 시선으로 소환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Collaboration] 공간과 브랜드의 서사를 설계합니다.
단순한 홍보가 아닌, 브랜드가 지닌 ‘대체 불가능한 이야기’를 기획합니다.
도시의 골목을 아카이빙하던 에디터의 시선으로, 브랜드 헤리티지(Heritage)를 단단한 텍스트로 구축해 드립니다.
- Urban & Space Archiving: 공간이 가진 역사성과 맥락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해석하여 브랜드 스토리로 치환합니다.
- Micro-History Storytelling: 거창한 역사가 아닌,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미시적이고 감성적인 서사를 설계합니다.
- Editorial Leadership: 기획부터 취재, 제작까지. 하나의 완결된 콘텐츠 시리즈를 총괄하는 에디토리얼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모든 브랜드엔 말하지 않은 문장이 있습니다. 그 문장을 찾아드립니다.”
Life Architect, EOM YONG SUN
삶의 밀도를 짓고, 시간의 결을 수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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