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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증류(蒸溜)의 기법: 밀도로 스며드는 포트폴리오 추출하기

    묵화담(墨畵淡) 프로젝트, 디지털 사옥으로의 첫 번째 증류 향기의 무게: 조향사의 작업대 수만 송이의 장미가 쏟아진다. 끓는 기름과 차가운 유리판 위에서 꽃잎들은 비명 없이 생을 다하고, 육신이 무너져 내리는 찰나, 그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고결한 향기는 피어난다. 수천 킬로그램의 꽃잎이 짓눌려 단 몇 방울의 정수로 남을 때, 본질은 비로소 영원성을 얻는다. 영화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갈망했던…

  • #10. 수장고를 열다: 미완의 기록을 전시로 승격시키는 법

    멜빌 듀이의 도서관 분류법을 통해 본 ‘흩어진 파편에 주소를 부여하는 기술’ 사서의 딜레마: 일서일가(一書一架)의 원칙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는 역사인가, 인류학인가, 아니면 철학인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지리학인가, 역사학인가, 생태학인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경계를 넘나들지만, 물리적으로 책은 단 한 곳의 서가에만 꽂힐 수 있다. 그 딜레마의 목전에서 사서는 자문한다. ‘이 책은 어디에 꽂아야 하는가?’…

  • #9. 심장 이식하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시하는 법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을 통해 본 ‘뒤틀린 얼굴에 각인된 흔적’ 고통, 불안, 욕망에 각인된 흔적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자화상 앞에 서면 당혹스럽다. 얼굴은 뒤틀려 있고, 형체는 일그러져 있으며, 색은 부자연스럽게 퍼져있다. “나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나 자신을 그린다. 그것은 고통, 불안, 욕망이며, 그것들이 얼굴에 각인된 흔적이다.” 베이컨에게 자화상이란 사진처럼 ‘닮은’ 얼굴을 그리는 일이…

  • #6. 빈집을 채우는 기술: 시간을 옮겨 집을 짓다

    콘텐츠 리마스터링: 철거되지 않는 기억, 그리고 해체와 재생의 기록 낡은 것을 버리지 않고, 옮기는 사람들 예전에 살던 동네, 세검정초등학교 맞은편에는 흥미로운 창고가 하나 있었다. 종로구가 운영하는 ‘한옥철거자재 재활용은행’이었다. 그곳에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질 뻔했던 한옥들의 잔해—대들보와 서까래, 그리고 기와들이 정갈하게 쌓여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대들보를 들여다보면, 그곳엔 저마다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안국동…

  • #3. 구조를 세우는 일: 벽지보다 기둥이 먼저다.

    워드프레스 테마 선택: 르 코르뷔지에는 벽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1914년,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바라보며 한 장의 설계도를 내놓았다. ‘돔 이노(Dom-Ino) 시스템’이라 이름 붙은 그 도면에는 육중한 벽체도, 화려한 장식도, 우아한 지붕도 없었다. 오직 얇은 콘크리트 슬래브와 이를 지탱하는 기둥, 그리고 층을 잇는 계단만이 존재했다. “이게 무슨 집인가. 그냥 뼈대일 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