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자락 시화골목부터 근대역사길까지, 지독히도 애달픈 목포 여행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1897년 개항 이후 수탈의 아픔과 예술의 꽃을 동시에 피워낸 낭만 항구 목포의 인문학적 기록을 만나보자.
Client: 농협은행
Project: 사보 <올백플랜> TRAVEL 연재
Category: Local Archive
Credit: 글/사진: 엄용선
Original Text
항구를 품은 유달산 아래 지독히도 애달픈 풍경이 자리한다.
시원한 바람이 유달산 산세를 타고 치달아 오른다. 드넓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 항구를 품은 도시, 끝없이 갈라지고 다시금 이어지는 골목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한 담벼락과 아스러진 기와장이 즐비하다.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 목포의 술 취한 골목길은 누군가의 멈춰버린 꿈을, 어느 퇴역 장군의 쓸쓸한 뒤안길을 떠올리게 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목에 자리한 포구’,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이곳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 까닭에 통칭 ‘목포’라 부른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항구가 들어설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목포는 항구’다. 다도해를 품은 천혜의 자연경관, 유구한 도시의 역사와 풍부한 문화예술은 ‘낭만 항구, 예향의 도시, 섬의 수도, 근대 1번지, 맛의 도시, 슬로시티’ 등등. 목포를 대변하는 수많은 별칭을 낳았다. 1897년, 개항과 함께 남도의 거점 항구도시로 발전한 목포는 이후 번성의 시대를 지나 빠르게 쇠락한다. 그리고 오랜 침체기를 거친 도시는 2019년, 목포해상케이블카의 개통을 기점으로 다시금 태동한다. 신 해양관광시대의 거점이자 서남권 중심도시로의 항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자 남도 예술과 맛을 자랑하는 ‘낭만항구’, 목포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근현대 문화의 중심지, 지붕 없는 박물관
역사를 나서자 진한 사투리가 도처에 생동한다. 구수한 남도식 환영사를 뒤로하고 재촉하는 발걸음이 목포의 원도심을 향하니 목원동과 그 일대인 유달동, 만호동을 아우르는 여정의 시작이다. 1897년, 국내 네 번째 개항 이후 목포 사람들의 중심지였던 이곳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즐비하다. 이에 동네 전체를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 지붕 없는 근대박물관을 조성하였다. ‘목포 근대역사길’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도보 탐방길로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현 유달초등학교) 일대에서 목포역을 잇는 대표 도로를 중심에 놓고, 유달산-목포진-선창으로 연결된다. 이곳의 6개 주요 문화재와 15개 개별등록문화재는 식민 수탈의 아픔과 당시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동시에 부두 노동운동, 소작쟁의, 의병운동, 항일운동 등 민족 저항의 역사를 대변한다.



먼저 목포근대역사관 제1관과 2관으로 운영 중인 구)목포일본영사관과 구)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들러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훑어본다. 근대라는 변화의 시기를 만나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수탈의 거점이 된 목포, ‘애써 수고해도 자신들의 입에 넣지 못한 식민지인이었던 목포 사람들에게 뱃고동 소리는 아련한 추억이 아닌 슬픔과 눈물의 소리’라는 글귀가 먹먹하다. 영사관 건물 뒤편에는 일제 말기 조성한 대형 방공호가 남아있다. 한국인 강제 동원의 현장에서 치미는 분노는 정확히 참혹함에 비례한다.

노적봉은 유달산 기슭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머물며 명량대첩을 지휘했다 전해지는데, 바위 벽면에 군량미를 쌓아 일본군의 사기를 꺾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번화로와 영산로 일대에는 단층의 적산가옥이 즐비하다. 구)목포부립병원 관사, 구)일본기독교회, 구)목포화신연쇄점은 물론, 전남 노동운동의 성지로 뜻깊은 목포청년회관 등등. 골목골목 근대역사의 흔적이 차고 넘친다.



만호동에 위치한 목포진(木浦鎭)은 바다를 수호하던 조선시대 해군기지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현대사 주요인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 그것.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그는 1963년과 67년, 이곳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박정희 정권의 신랄한 비판자이자 행동하는 양심, 목포 삼학도에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도 조성되어 있다.
근현대 문화의 중심지, 지붕 없는 박물관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고스란히 담은 원도심 일대는 ‘애환의 속삭임, 이 땅에 예술을 싹틔운 숱한 보물들’이 즐비하다. 예향의 도시 목포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남농 허건(미술), 박화성⋅차범석⋅김우진(문학), 최정자(무용)를 비롯해 가수 이난영(목포의 눈물)과 남진 등등. 노적봉예술공원에 가면 이들의 예술적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가수 윤심덕과 현해탄 동반 투신으로 유명한 김우진은 목포 최초의 예술가이자 근대극의 개척자이다. 북교동 성취원 터 인근 언덕의 ‘김우진 거리’를 가면 그의 대표작과 비평내용, 김성규와 김우진 3형제 이야기 등을 벽화와 조형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한국 여성문학의 선구자 박화성의 <추석전야>와 <하수도공사>에는 1920~30년대 당시 목포와 목포 사람들의 생활상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소설을 걷는 여정이 목포항 선창가를 따라 서산동으로 이어진다. 득세하는 일본인들에게 밀려 유달산 자락에 겨우 자리 잡은 터에는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이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구불구불 좁은 오르막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서산동 시화골목은 영화 <1987>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하다. 그곳의 ‘연희네슈퍼’는 스크린 속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며 레트로 감성 여행을 선도한다.


앞서 근대역사 탐방지로 들렀던 구)목포일본영사관은 박화성의 역작 <하수도공사>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한 목포부청 건물로 묘사되었다. 이곳은 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도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 동권과 용희가 어딘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죽교동 골목을 지나 양동길로 접어든다.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양식 마을에는 박화성이 다녔던 정명여중고가 있다. 김우진과 박화성의 생애가 궁금하다면 목포 갓바위문화타운의 목포문학관을 들러도 좋다.
[원고발행] 원도심 골목을 따라 걷는 목포 인문학여행 (클릭)




2025 Reflection
무너지는 것들이 건네는 위로
‘목(Mok)’에서 읽어낸 삶의 변곡점

2025년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목포(木浦)는 단순한 지리적 항구를 넘어 거대한 인생의 은유로 다가온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목’이라는 지명의 유래처럼, 이곳은 개인의 세밀한 서사(강)가 거대한 세상의 운명(바다)과 충돌하며 소용돌이치는 지점에 있다.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이라던 낡은 골목의 탄식은, 이제 막다른 끝이 아닌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는 ‘전환의 신호’로 읽힌다. 강물이 바다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을 던져 비로소 그 너비를 넓히듯, 목포는 삶의 변곡점에 선 우리에게 거대한 운명을 받아들일 용기를 건넨다.
적산(敵産)과 적산(積産), 아픔 위에 쌓인 시간의 층위
원도심 곳곳에 남은 빨간 벽돌 건물과 방공호는 여전히 식민 수탈의 선명한 흉터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25년의 시선에서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을 넘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자산(積産)’으로 다시 읽는다. 참혹한 방공호와 화려한 근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풍경은 우리 내면의 상처와 영광이 뒤섞인 모습과 닮아 있다. 과거를 지우는 대신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품어낸 목포의 방식은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아픈 역사를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가. 그것을 인생의 자산으로 치환할 용기가 있는가.
‘시화(詩畵) 골목이 가르쳐준 결핍의 미학

유달산 자락의 시화골목을 다시 떠올린다. 득세하는 이들에게 밀려 겨우 자리 잡은 터전,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거미줄 같은 오르막은 분명 ‘결핍’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 틈새를 메운 것은 김우진과 박화성 같은 거장들이 피워낸 예술적 숨결이었다. 2025년의 우리는 이 ‘변방의 창조성’에서 무너진 서사를 다시 세우는 힘을 발견한다. 위태로운 담벼락과 아스러진 기와장 사이에서도 시는 쓰여진다. 결핍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타인과 어깨를 맞대고 서로의 빈틈을 채우게 하는 연대의 시작점임을 이 도시는 증명하고 있다.
다시 시작할 용기, 지붕 없는 환대
과거 목포 선창가에서 느꼈던 지독히도 애달픈 ‘먹먹함’은, 2025년의 오늘 ‘다시 시작할 용기’라는 뜨거운 문장으로 번역된다.

누군가의 멈춰버린 꿈, 어느 퇴역 장군의 쓸쓸한 뒤안길, 더 갈 데 없어 동백꽃처럼 타올랐던 삶들. 항구가 품은 슬픔의 뱃고동 소리는, 정체된 삶을 끝내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기꺼이 출항하라는 응원이 된다. 목포는 더 이상 소외된 뒤안길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고, 무너진 꿈을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둔 ‘지붕 없는 환대(Open Hospitality)’의 성소다. 비로소, 무너지는 것들조차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배운다.
[Collaboration] 사유의 깊이로 지면의 품격을 설계 합니다.
세상의 풍경 속 문장을 읽기 위해 여행과 건축, 예술을 사유의 렌즈로 삼습니다.
라이프 아키텍트 엄용선은 현상 너머 본질을 응시하며, 대상의 결을 삶과 연결하는 정제된 인문학적 내러티브를 설계합니다.
- 기명 칼럼 및 에세이 기고: 삶의 구조와 방향성을 탐색하는 깊이 있는 시선을 제공합니다.
- 인문학적 인사이트 콘텐츠 기획: 문화와 예술적 자산에서 시대적 통찰을 길어 올려 고품격 콘텐츠로 형상화합니다.
- 전문 필자의 페르소나: 논리적이며 신뢰감을 주는 문장, 사유의 여백과 흐름을 조율합니다.
텍스트를 넘어 뉘앙스로, 메시지를 넘어 여운으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깊이 있는 시선과 정제된 언어가 필요한 모든 지면에 독보적인 사유의 층위를 입힙니다.
매체 칼럼 기고, 전문 에세이 연재, 인문학 기반 인사이트 리포트 및 콘텐츠 기획
Life Architect, EOM YONG SUN
삶의 밀도를 짓고, 시간의 결을 수집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