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보다 강한, 그리움의 공간학

2025년의 시선: 함께하지 못한 시간의 공백
2014년, 광활한 우주라는 무대 위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비극을 처음 마주했다. 당시의 나는 상대성 이론이라는 거대한 과학적 장막 너머로 부녀가 잃어버린 100년의 시간을 응시하며 그것을 ‘감당할 길 없는 허무’라 정의하였다. 웜홀을 통과해 블랙홀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무형의 추억들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물었다.
그로부터 11년의 지층이 쌓인 지금, 오래된 글을 다시 꺼내어 문장의 결을 다듬는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은 ‘허무’의 이면을 다시금 보게 하였다. 그것은 시공간을 이기지 못한 인간의 연약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고자 하는 의지’가 만드는 가장 뜨거운 마찰열에 가깝다.
그사이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부모님은 노쇠해지셨고, 어머니는 병마와 위태로운 싸움을 이어가신다. 생명의 유한함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 앞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11년 전에는 우주를 유영하는 쿠퍼에게 감정을 이입했다면, 이제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지상의 시간을 홀로 견뎌낸 늙은 딸 머피가 눈에 밟힌다. 죽음보다 잔인한 것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의 공백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5차원의 서재: 기억이 입체가 되는 순간
영화의 절정은 블랙홀 너머의 ‘테서랙트(Tesseract)’에서 완성된다. 감독은 인간의 복잡한 기억과 시간을 ‘서재’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고전적인 공간으로 형상화했다. 쿠퍼가 점유한 그 공간은 단순한 고차원이 아니다. 딸 머피의 모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지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형성한다. 쿠퍼는 이 복잡한 격자 안에서 필요한 기억을 선별하여 모스 부호라는 선(線)으로 연결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은, 이곳에서 ‘나는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가’라는 절박한 물리적 운동으로 변모한다.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블랙홀의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은 중력이 아니라, 닿으려는 마음의 질량이다. 테서랙트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후회가 입체로 구현된 장소다. 시간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손을 뻗는 고립된 의지. ‘이렇게 살면 안 돼’라는 외침은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가장 투명한 자기 고백으로 남는다.

황색 먼지와 웜홀: 소멸과 탄생의 미장센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황색의 먼지 입자들은 인류의 종말을 암시하는 불길한 미장센이자 역설적으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증명하는 배경이 된다. 로밀리 박사가 홀로 견뎌낸 23년의 정적은 단순히 숫자로 치환될 수 없는 ‘침묵의 두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가 견뎌야 했던 정적의 밀도는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가혹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사유는 구체적인 공간 구조로 확장된다. 밀러 행성에서 시간의 왜곡은 ‘공간의 수직화’로 번역된다. 수평의 평온함을 깨고 솟구치는 거대한 파도는 압축된 시간이 물리적 형태로 치환된 결과다. 수평선이라는 안정이 수직의 벽이라는 상실로 변하는 순간, 인간의 무력감은 파도의 높이만큼 거대해진다. 인류의 터전인 쿠퍼 스테이션 역시 뒤집힌 중력 구조를 통해 시간의 역설을 증명한다. 공간의 형태는 완벽하게 복원되었으나 그 안을 채웠던 관계와 온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집은 재건할 수 있어도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비극을 영화미술은 전복된 수직과 수평의 구조로 웅변한다.

슬픔의 물리학: 그리움의 질량보존법칙
이 영화가 단순한 신파를 넘어선 이유는, 부녀의 이별이라는 뜨거운 감정 아래에 ‘상대성 이론’이라는 차가운 물리적 골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 지연과 특이점 같은 개념들은 한 아버지의 절규를 받쳐주는 단단한 대들보가 된다. 논리가 차갑고 정교할수록 그 위에 얹힌 슬픔은 무너지지 않는 질량을 얻어 우리에게 더 선명하게 전달된다.
우주의 거대한 법칙이 가닿는 종착지는 역설적이게도 머피의 침실, 초침의 떨림, 먼지 위에 새겨진 신호 같은 소소한 일상이다. 잃어버린 10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 작은 공간을 끝내 떠나지 못한 이들의 기다림이다. 우리 역시 각자의 블랙홀을 지나며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는 23년의 고독을 견디고, 누군가는 5차원의 벽을 두드린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남기는 ‘흔적’들이다. 2014년의 자조 섞인 외침이 2025년의 확신이 되어 돌아왔다. N차원 어디선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부르고 있다. 문이 덜컹 거린다. 책장이 흔들린다. 시간을 건너 나에게 보내는 모스 부호를 이제는 외면할 수 없다.

절박한 신호, 박제된 죄의식의 냄새
“두 분, 가까이 붙으세요! 마주 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얼마 전 있던 가족사진 촬영의 현장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형제자매는 화기애애했고 여든의 두 분은 오랜만에 얼굴에 옅은 분으로 치장도 하였다. 포토그래퍼는 연신 웃음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의 주문에 몸을 기울인 순간,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것은 수분이 다 빠져나간 건조한 살비듬의 냄새이자 늘어진 땀구멍에서 거름망 없이 통과되는 폐부의 깊숙한 악취였다. 특히 오랜 항암으로 내려 앉은 잇몸과 그로 인한 구취는 변명할 여지 없는 직관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수년간 혈관을 타고 흐른 독한 약물들이 내장을 태우고 남긴 그을음의 냄새이자, 내장 기관의 비명이다.
순간적으로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받았다. 슬픔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야속하게도 생물학적인 역겨움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자, 웃습니다! 하나, 둘, 셋!” 나는 괄약근을 조이듯 안면 근육에 힘을 주어 미소를 붙잡았다. 이성의 끈을 붙잡고 어색함의 탈을 쓴 웃음이었으리라. 셔터가 터지고 번쩍이는 섬광에 순간의 죄의식도 하얗게 박제되었다.
문득 10년 후 2035년의 내가 보낼 신호를 상상한다. 렌즈 너머의 미래에서 나는 ‘지금 네가 찡그리며 참아낸 이 공기가, 훗날 사무치게 그리워질 생의 마지막 숨결’이며, 돌아가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그때’라고 타전할 것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는 시간이 우주의 어떤 영광보다 귀했다는 사실을 절박하게 전할 것이다. 덜컹거리는 문소리와 흔들리는 시계 바늘은 부모님께 당장 달려가라고 말하는 미래의 내가 보내는 신호다. 나는 이제 그 신호를 따라, 사라진 시간을 복원하려 한다.
※ 이 글은 2014년, 날 것의 단상을 2025년, 다시 마주한 시선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부록] 2014년, 날 것의 메모 (클릭)
※ 이 글은 2014년 당시 영화를 감상하고 바로 기록한 날 것의 단상입니다.
상대성이론을 내세운 범우주적 과학이론은 둘째치고 지극히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세상천지 이처럼의 비극이 또 있을까 싶다. 늙어버린 딸의 죽음앞에 부녀간의 잃어버린 100년은 허무하고(허무하다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무형의 추억은 웜홀을 타고 블랙홀 저편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유레카'의 외침에서 어쨌든 인류는 다시 생존본능을 이어가지만, 대의를 위한 소소한 희생은 어디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렇게 지속되는 인류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모든것이 허무한 삼라만상의 카오스에서 'dna정보에서 종족번식의 의지가 부성애와 모성애의 근간'이라는 친구의 말은 황색의 먼지 입자가 되어 무의미한 허공을 떠돈다.
각설하고, 인터스텔라는 웜홀이니, 블랙홀이니, 상대성이론이니하는 물리학적 이론을 떠나 적어도 잊고 지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이 물음을 그동안 너무 잊고 살았다. 삶이 그리 바쁜것도 아니었는데 시간이 그리 녹록치가 않았나 보다.
1. 어린 머피는 제시카 차스테인보다 앤 헤서웨이를 더 닮았다.
2. 거대한 파도앞에 필요 이상의 굼뜸은 위대한 자연에 바치는 인간의 경건함인가?
3. 로밀리(흑인박사)의 '혼자놀기의 진수'라는 책이 나온다면 당장 사 볼거다. 아무도 없는 우주선에서 23년의 시간이라니.... 끔찍하다.
4. 만박사님 헤드 셧은 절로 육성이 터지더라.
5. 두 놀런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다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지분은 얼마가 될까?
6. 머피의 '유레카'세상은 결국 트루먼의 세상이었다.
7. 고로 이 모든건 가짜 ㅋ
8. 방금 문이 덜컹했는데 5차원 어디선가 내가 나를 부르는군
9. 이렇게 살면 안돼~~~라고.
10. 유레카-
[Invitation]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당신의 삶은 계속됩니다.
스크린 속 허구가 아닌, 삶이라는 리얼리티를 응시합니다.
영화 속 공간과 서사에서 길어 올린 인문학적 통찰(Insight)을 통해, 무심코 흘려보낸 당신의 일상을 재해석할 새로운 시선을 제안합니다.
- For Seekers: 줄거리 요약이 아닌, [삶의 본질]을 관통하는 깊이 있는 사유가 그리운 분.
- For Creators: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바라보며 새로운 [영감의 원]을 찾고 싶은 창작자.
- For Dreamers 영화 같은 삶을 꿈꾸지만, 현실의 [구조와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주인공.
삶이라는 영화의 편집권은 오직 당신에게 있습니다.
이 기록이 당신의 다음 씬(Scene)을 기획하는 데 작은 영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취향의 서재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Life Architect, EOM YONG SUN
삶의 밀도를 짓고, 시간의 결을 수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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