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가회동 북촌길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일제강점기 최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곳은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2019년 당시, 이 집이 품은 시대적 파격과 아름다움을 기록하기 위해 가회동의 석단을 올랐다
Client: 수산가족
Project: 사보 연재 시리즈 <건축의 발견>
Category: Space Narrative
Credit: 글 엄용선 / 사진 백인제가옥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 최상류층의 생활을 엿보다.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북촌이라 불리는 곳, 백악의 기운이 든든히 받혀 주어 명당 중의 명당이라 불리는 이 땅은 예부터 조선 사대부, 양반 가문의 집성촌으로 알려졌다. 그곳의 가회동에 가면 일제강점기 최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백인제 가옥을 만날 수 있다.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곳은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윤보선 가옥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그 가치가 높다.
100년 역사 북촌 백인제 가옥, 근대 한옥의 정수를 담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가와 재력가들이 살았던 서울 북촌, 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지 위 가옥은 헌앙하게 자리한다. 천지(天地)를 가로질러 수평을 이루는 담장, 그곳의 높다란 대문간채를 올려다 보니 그 끝이 아득하기만 하다. 바람은 조용하고 구름은 고요한 시간 속에 흘러간다. 한 발 한 발, 석단을 오르는 걸음. 육중한 나무문과 빨간 벽돌 담장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자 고풍스레 보이는 한옥의 전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가회동 일대의 한옥 12채를 합친 넓은 대지에 당대 최고급 건축 재료인 압록강 흑송(黑松)으로 지은 백인제 가옥, 늠름한 뼈대는 그 자체로 장부의 기개가 느껴지니 과히 근대 한옥의 정수라 할만하다. 가옥은 이곳의 마지막 주인인 ‘백인제(白麟濟, 1898년~미상)’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백인제 가옥’이라 한다. 조선 제일의 외과의사라는 명성을 얻은 그는 백병원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 부유층의 저택은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 아담한 별당채로 이루어진다.

사랑채와 사랑채 정원은 총 대지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이는 가옥의 기능이 접대와 사교 활동에 그 우선순위를 둔 까닭이다. 실지로 이곳의 첫 번째 주인인 한상룡(韓相龍, 1880년~1947년)은 당시 한성은행 전무로 조선 사교계의 핵심 인물이었다. 가옥은 그의 사교 활동의 근거지로 1913년 완공후 역대 조선 총독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까지 다녀 간 바 있을 정도. 1935년 한상룡은 이 가옥을 개성 출신의 언론인 최선익(崔善益, 1905년~미상)에게 넘긴다. 그리고 1944년, 이곳은 백병원 설립자이자 당시 외과수술의 대가였던 백인제의 소유가 된다.

백인제 가옥은 사실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다. 2015년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영화 <암살>을 기억하는가? 극중 친일파 강인국의 으리으리한 저택! 그곳의 실제 촬영지가 바로 이곳 백인제 가옥인 것이다. 스크린 가득찬 저택의 화려함, 그 으리으리함이 눈앞으로 실제한다. 그 생생함이 시간을 거슬러 영화 속 그날을 현실에 재생하니 다시금 그때의 감동을 되새긴다.



가옥의 내부, 관리가 잘 된 마루 바닥은 윤기가 넘치고 걸음걸음 삐걱대는 소리는 시간의 농축을 대변한다. 방과 거실, 복도를 차례로 돌자 일제강점기, 조선 최상류층의 생활이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구조상 특이한 점은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지 않고 복도로 연결한 점이다. 이는 사랑채의 일부가 2층으로 축조된 것과 더불어 전통한옥과 구별되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 붉은 벽돌과 전면 유리창의 사용 등, 전통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의 멋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별당채는 대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북촌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히 일품인 풍경 앞에 새삼 인생사 허망함이 밀려오는 건 그 속에 깃든 백인제 선생과 가족들의 기구한 삶에 기인하리라.
방문정보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6(가회동 93-1)
TEL : 02-724-0294
자유관람(외부만 허용) : 오전9시 ~ 오후 6시(입장마감 오후 5시30분)
해설과 함께하는 내부관람 투어 예약 : 서울시 공공서비스 http://yeyak.seoul.go.kr
2025년의 회고: 집 한 채에 고인 백 년의 현대사, 네 명의 주인을 읽다.
글을 쓴 지 수년이 지났지만, 별당채에서 바라보던 북촌의 기와 물결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한 채의 집이 네 명의 주인을 거치며 품어온 역사의 굴곡. 단순히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우리 근대사의 단단한 대들보를 비로소 말한다.

백인제 가옥을 다시 마주하며, 건축은 결국 사람의 생(生)을 기록하는 가장 거대한 양식임을 깨닫는다. 1913년 건립 이후 백 년의 세월 동안 이 집을 거쳐 간 주인—한상룡, 한성은행, 최선익, 그리고 백인제—의 면면은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진 궤적을 그대로 투영한다. 한 채의 집이 품기엔 너무도 벅찬 시대의 서사가 처마 끝마다 걸려 있다.

한상룡의 허망한 권세와 관동대지진의 교훈
이 집을 처음 지은 한상룡은 부와 권력을 동원해 궁궐에 버금가는 호사를 누렸다. 친일의 대가로 쌓은 명성은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가 방문할 정도로 화려했으나, 그 위세는 영원하지 않았다.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은 일본 경제와 식민지 금융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그가 경영하던 한성은행 또한 부실의 늪에 빠진다. 결국 1928년, 한상룡은 은행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이 대저택을 한성은행에 넘겨야 했다. 친일로 쌓은 성(城)은 제국의 위기 앞에서 아무런 구원이 되지 못했으며, 그는 결국 버려지기 쉬운 조선인일 뿐이었다는 비정한 현실을 목격한다. 권력의 비정함과 친일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이 가옥의 첫 번째 이별이 증명한다.
철저히 배제된 공간에 스민 민족의 숨결
한성은행 시기 은행 소유가 된 가옥이 천도교 단체에 임차되어 지방 교도들의 숙소로 쓰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친일 연회장으로 설계된 공간이 민족 종교의 회합 장소가 된 이 ‘기묘한 동거’는 한 시대의 균열을 보여준다.

최선익의 실리적 선택과 공간의 정화
1935년 이 집을 인수한 민족 언론인 최선익의 행보는 시대적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당시 북촌은 대형 필지가 쪼개지고 도시형 한옥이 들어서던 부동산 개발의 열풍 속에 있었다. 최선익이 부지를 744평으로 축소하고 개보수한 것은 이러한 개발 흐름에 맞춘 실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역자의 ‘연회장’을 민족 지식인의 ‘주거 공간’으로 변모시킨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공간에 서린 탐욕의 기운을 걷어내는 문화적 세대교체가 되었다. 치밀한 저항은 아니었을지라도, 상식적인 삶의 터전으로 공간을 되돌려놓으려 했던 지식인의 태도가 오늘날 백인제 가옥의 단정함을 만든 토대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술(仁術)의 거처, 그리고 기다림의 역사
가옥의 마지막 주인이자 명칭의 주인공인 백인제 박사는 3·1운동에 참여했던 외과 의사로, 1944년 이 집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1950년 7월, 그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납북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끌려가시던 날 밤의 공기를 잊을 수 없다”던 딸 백난희 씨의 회고는 이 웅장한 가옥이 품은 가장 아픈 기억이다. 또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60년 넘게 집을 원형 그대로 지켜낸 아내 최경진 여사의 삶은, 이 가옥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지독한 그리움의 성소’로 승화시킨다.
백인제 가옥은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한상룡의 욕망부터 백인제 가족의 눈물까지, 이 모든 파편을 품은 채 서 있는 이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아픈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견뎌낸 시간의 증거다. 집은 말이 없으나,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숨결은 흑송의 결마다 새겨져 오늘도 우리를 멈춰 세운다.
※ 이 글은 2018년, 당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공간의 이면을 2025년의 시선으로 리마스터링하여 보강한다
[Collaboration] 사유의 깊이로 지면의 품격을 설계 합니다.
세상의 풍경 속 문장을 읽기 위해 여행과 건축, 예술을 사유의 렌즈로 삼습니다.
라이프 아키텍트 엄용선은 현상 너머 본질을 응시하며, 대상의 결을 삶과 연결하는 정제된 인문학적 내러티브를 설계합니다.
- 기명 칼럼 및 에세이 기고: 삶의 구조와 방향성을 탐색하는 깊이 있는 시선을 제공합니다.
- 인문학적 인사이트 콘텐츠 기획: 문화와 예술적 자산에서 시대적 통찰을 길어 올려 고품격 콘텐츠로 형상화합니다.
- 전문 필자의 페르소나: 논리적이며 신뢰감을 주는 문장, 사유의 여백과 흐름을 조율합니다.
텍스트를 넘어 뉘앙스로, 메시지를 넘어 여운으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깊이 있는 시선과 정제된 언어가 필요한 모든 지면에 독보적인 사유의 층위를 입힙니다.
매체 칼럼 기고, 전문 에세이 연재, 인문학 기반 인사이트 리포트 및 콘텐츠 기획
Life Architect, EOM YONG SUN
삶의 밀도를 짓고, 시간의 결을 수집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