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비워짐으로써 완성되고, 채워짐으로써 증명된다.

여백의 기다림: 예술에 보내는 초대장
건축이 끝난 직후의 묵화담은 거대한 백지(Tabula Rasa)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아직 누군가의 아침이 시작되지 않은 공간. 어떤 대화도 스며들지 않은 벽. 그 침묵을 채우는 가장 묵화담 스러운 방법은 무엇일까? 흔히 빈집을 채우는 방식은 공식화 되어있다. 컨셉을 정하고 그에 맞는 가구를 들이고, 디테일한 장식을 하고 조명을 밝힌다. 그러나 묵화담의 여백(餘白)은 그런 종류의 채움을 거부했다. 장식이 아닌 대화, 물리적 오브제가 아닌 공간의 결을 이해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술을 초대하기로 했다.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담는 그릇으로의 묵화담 공간 디렉팅, 그 첫 번째 손님은 서양화가 전은숙의 작품들이었다.


집 속에 집을 들이다: House에서 펼쳐지는 Zip
2023년 7월 26일부터 8월 25일까지, 한 달간의 전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집집(House X Zip)>展이라 명명했다. 첫 번째 ‘집’은 물리적인 거주 공간인 House(묵화담)를, 두 번째 ‘집’은 파일의 압축 확장자이자 모음을 뜻하는 Zip(전은숙의 작품들)을 의미한다. 집(House) 안에 집(Zip)을 푼다—그 언어유희 속에는 공간과 예술이 서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숨어 있었다.
전은숙 작가는 날것(Raw)의 붓질 그대로 캔버스 표면을 활개 치며, 불안한 감정과 보편적 실존의 숙명을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로 쌓아 올린다. 투명한 색감의 뒤엉킴, 속도감과 경쾌함이 지배하는 행위. 그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화면은 극도의 생동감을 연출하며, 보는 이에게 밀도 높은 에너지를 전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 이면에는 늘 어떤 처연함이 있다.
식물—특히 관상용 식물—을 소재로 사회의 관계와 갈등을 탐구해온 작가. 그녀가 그리는 화려한 식물의 이미지는 ‘쓸모’로 기능해야 하는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산물이다. 어여쁜 화면에 가려진 상처와 소박함. 아픔을 숨긴 채 존재하는 보편적 실존의 숙명. 흩어진 시선과 불안한 감성을 정리시키는 자기 반성적 과정에서 탄생한 그림들은, ‘박제된 행위’로 설명될 수 있다.
단아하고 정적인 묵화담의 공간에 에너지가 응축된 전은숙의 회화가 놓이는 순간. ‘정적(Static)’과 ‘동적(Dynamic)’의 강렬한 충돌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묵화담의 여백은 그림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었고, 그림은 비어있는 공간에 생동하는 맥박을 부여했다.

중첩의 미학: 실재와 재현 사이
창밖으로는 실제 조성된 묵화담의 풍경이 펼쳐진다. 자연스러운 시선의 이동이 벽면에 닿으면 붓 끝에서 완성된 회화의 풍경이 웅장하다. 두 개의 집이 나란히 존재하고, 때로는 마주 보며 서로를 비춘다. 이 묘한 중첩(Overlapping)은 방문객에게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했다. 그 경계에서 관람객은 더 이상 ‘집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는 존재’가 된다.
모우림건축에서 제안한 묵화담은 ‘내향적 공간의 단아한 품격’을 지향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그 절제된 아름다움은 예술을 담아낼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빈 벽이 그림을 받치고, 그림이 빈 벽의 의미를 되살렸다.
이로써 묵화담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예술을 담아내는 그릇(Vessel)으로서의 잠재력을 증명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까이 두고 보는 그림모음전. 이 새로운 전시 형태는 작가의 치열한 고민을 생활 속으로 한층 밀접하게 끌어왔다.

공간 연출: 시선의 흐름을 지휘하다.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벽에 거는 행위가 아니다. 건축가가 의도한 동선과 빛의 흐름 위에 작품을 얹는 치밀한 연출(Directing)이다. 간이 가진 고유의 리듬을 읽어내고, 그 리듬에 맞춰 작품을 배치하는 일. 우리는 총 2개 층에 걸쳐 11점의 작품을 배치하며, 관람객이 집을 탐험하듯 그림을 마주하게 했다.
현관과 복도는 느린 진입을 의도한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소품 위주의 작품을 배치하여, 관람객이 공간의 깊이감(Depth)을 느끼며 천천히 빨려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성급함을 허락하지 않는 동선. 그것이 묵화담이 제안하는 삶의 속도다.
거실 (Main Gallery)은 압도적인 조우와 마주한다. 높은 층고와 압도적인 채광이 쏟아지는 거실 메인 벽면에는 압도적 크기와 밀도로 물리적 위압감을 전하는 작가의 대형 회화 작품을 배치했다. 창밖의 숲과 그림 속의 색감이 조응하며,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되는 순간을 의도한 연출이다.
다이닝 룸은 일상 속의 예술을 표현한다.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공간에는 따뜻한 색감의 정물화와 소품을 두어, ‘예술이 있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했다. 이곳에서 그림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곁에 자연스럽게 머물면 그만이다.




층별 서사: Void에서 Private으로
이런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층별 컨셉을 정한다. 1층은 압도적 개방감과 조우하는 <The Void>. 현관을 지나 마주하는 1층 거실 메인 벽면에는 180cm에 달하는 대작 <근시의 시선_2>를 배치했다. 묵화담의 높은 층고가 주는 개방감 속에서, 그림이 뿜어내는 묵직한 색채 에너지는 공간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다이닝 공간으로 이어지는 동선에는 <Royal Botanic Garden>을 두어, 창밖의 실제 정원과 캔버스 속의 식물이 서로 대화하는 듯한 ‘중첩의 미학’을 연출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진입하면 분위기는 반전된다. 이곳은 내밀한 사유의 공간인 <The Private>이다. 긴 복도를 따라 <한여름 밤의 꿈> 연작을 배치하여, 몽환적이고 내밀한 정서가 흐르도록 유도했다. 가장 깊숙한 안식처인 마스터룸 영역에는 <눈 뜬체 꾸는 꿈>과 <Glitch Season>을 두었다. 침묵 속에서 오롯이 자신과 대면하는 사색의 시간. 집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내밀한 그림을 마주한다.



경험의 설계: 구경꾼이 아닌 관람객으로
우리는 이 행사의 성격을 ‘부동산 투어’가 아닌 ‘프라이빗 도슨트 투어’로 규정했다. 100% 사전 예약제 운영은 소수의 인원이 공간의 침묵과 예술의 울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위한 의도적 배려였다. 북적이는 소음 대신, 낮은 음악과 향기, 그리고 작품을 설명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화려한 화환도, 떠들썩한 축하도 없었다. 묵화담이 가진 고유의 빛과 바람, 그 속에 놓인 예술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길 바랬다.
방문객들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그림을 감상한다. 바닥재의 결, 공간의 온도, 집이 가진 고유의 체온. 이 미세한 감각을 맨발의 감촉으로 오롯이 전달 받는다. ‘보러 온 사람’에서 ‘머무는 사람’으로 전환을 유도한 장치였다.
창밖으로는 숲이 그림처럼 걸리고, 벽면에는 숲을 닮은 그림이 걸린 풍경. 방문객들은 그 순간 잠재적 구매자를 넘어, ‘집’이라는 예술 작품을 향유하는 관람객이 되었다. 이는 묵화담이 단순한 주거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삶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Director’s Note. 2년 후의 회고
그때 나는 “좋은 공간은 그 안에 놓일 콘텐츠를 가리지 않는다.”고 썼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문장 조금 고쳐 쓰고 싶다. 좋은 공간은 그 안에 놓이는 모든 것을 더 좋게 만든다. 품어 안고 끌어 올리는 포용과 관용이 배어있다.
텅 빈 공간에 가구가 아닌 그림을 먼저 채웠을 때, 오히려 건축의 선(Line)은 더 선명해졌고 공간의 깊이(Depth)는 더해졌다. 공간 디렉팅(Space Directing)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이 가진 잠재된 서사(Narrative)를 읽어내고, 그와 가장 잘 공명(Resonance)하는 콘텐츠를 기획하여 공간의 격(Class)을 수직 상승시키는 전략이다. <집집展>은 묵화담이 가진 포용력을 실험하는 첫 무대였다.
2025년, 현재 묵화담은 누군가 저마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창밖의 숲을 바라보고, 저녁에는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것이다. 그 일상 속에 전은숙 작가의 그림은 없다. 전시는 끝났고, 작품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예술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흔적의 위대함을 믿는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나 공간의 어딘가에 스며들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감각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한때 그림이 걸렸던 벽을 바라볼 때 느끼는 미세한 충만함. 텅 빈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용기. 여백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묵화담은 그렇게 갤러리가 되었다가, 다시 누군가의 집이 되었다.
예술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묵직한 품격만이 향기처럼 남았다.
[Project Scope] 공간에 문화적 호흡을 불어넣는 일.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람과 예술이 머무는 ‘문화적 장소’를 기획합니다.
- Concept Planning: 건축 기획 및 공간 철학 도출
- Brand Storytelling: 네이밍(Naming) 및 브랜드 세계관 구축
- Arch-Editorials: 채널 기획/운영 및 건축 비평·에세이 발행
- Brand Design: BI, 브로셔, 현장 배너 및 어플리케이션 디자인
- Space Directing: 샘플하우스 콘셉트 기획 및 공간 연출(VMD)
당신의 공간도 갤러리가 될 수 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에 예술적 가치를 입히고, 방문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합니다.
건축적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과 콘텐츠의 완벽한 조화를 설계합니다.
Life Architect, EOM YONG SUN
삶의 밀도를 짓고, 시간의 결을 수집합니다.


Leave a Reply